78. 해마다 조선제朝鮮祭를 지내다.

 

 

부도지 14장의 이야기에는

단군조선의 수도이자 모든 나라의 공도公都인 부도에서

10년마다 개최한 신시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부도지 15장의 내용은

조시와 해시를 설치한 내용과

조시와 해시에서 매년 10월 조제朝祭(조선제)를 지낸 내용과

그로인해 발달하게 된 물자의 교역

요즘말로 유통산업의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뜯어서 풀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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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례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腹)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시월 조제朝祭 지내니,

사해의 여러 종족들이 모두 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례澧는 호남성을 흘러 동정호로 들어가는 강 이름이고

양陽은 호북성을 관통하여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인

한수漢水의 북쪽에 있는 지명이다.

 

그래서

부도지를 처음 번역하여 세상에 알린 김은수씨

례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설치했다고 하는

조시朝市의 위치를 지금의 무산巫山 정도로 추정하였다.

 

 

 

 

 

 

 

또 이 부도지에서 언급한 팔택八澤에 대해서는

양자강 좌우에 하나라 우임금이 만들었다는

구택九澤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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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0년마다 부도에서 열리는 신시神市와는 별도로

조시와 해시가 설치되어 있는 각 지방에서

지방마다의 특산물을 제물로 받들어 올리고

조제朝祭라는 천제를 매년 10월에 함께 지냈다는 것으로

부도지는 기록하고 있다.

 

지나족이 기록한

우리 동이 민족에 대한 옛 기록에 따르면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예에서는 무천舞天,

고구려에서는 맹東盟이라는

제천祭天 국중대회를 열었다는 내용의 근원

여기에 밝혀져 있다.

 

 

 

 

 

 

 

그 다음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산악 종족들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종족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치며

신명께 비는 말에

“물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에 받들어 올리니

오미로 물든 피를 새롭게 하여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이를 가리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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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친 제물은

산악족이 사냥으로 잡은 사슴과 양이라 하였고

해양족이 어로로 잡은 물고기와 조개라 하였다.

 

또 기도문에 표현된 천제의 목적이

오미의 변으로부터 시작된 타락으로부터

재앙이 시작되었으니 백성의 재앙을 거두어주실 것을

하늘에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거국적 국가행사였든 제천의례가

고려의 팔관회를 끝으로

이씨조선의 시대에는 사라져버렸고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민간의 제사와

무속인들이 서낭당에 제사 올리는

동네제사의 형태로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4344년 5월 7일 일복이